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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시대 유물 "굿바이 육교"

작성일 : 2010.11.15 17:50:50 조회수 : 1001
개발시대 유물 ‘굿바이~육교’
한겨레 | 입력 2010.11.15 09:10





[한겨레] 부산 올해초 11곳 철거…서울도 4년새 222→187개

'육교'의 사전적 정의는 꽤나 인간적으로 읽힌다. "번잡한 도로나 철로 위를 사람들이 안전하게 횡단할 수 있도록 공중으로 건너질러놓은 다리." 그러나 우리나라 육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의 안전보다는 '자동차가 안전하게 질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개발시대의 부산물이란 성격이 강하다.


우리나라에서 육교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인 1966년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의 심각한 도시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부산시장이었던 김현옥 시장을 서울시장으로 전격 임명했다. 이때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끝난 시점으로, 경제성장에 따른 서울로의 인구 집중이 두드러졌다. 서울시가 해마다 발간하는 '서울 통계 연보'를 보면, 당시 서울의 인구는 379만3280명으로 지금(1046만4051명)의 36%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 10년 전인 1956년(150만3865명)에 견주면 무려 2.5배나 증가했다. 기반시설은 턱없이 부족한데, 인구가 폭증하면서 교통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에 따라 '원조 불도저' 김현옥 시장이 부임하면서 수많은 공사가 벌어졌다. 도심 교통난 해소 목적으로 남산 1·2호 터널과 사직터널이 뚫리고, 강변도로와 청계고가도로, 삼각지 고가로터리 등이 놓였다. 그러면서 김 시장은 서울 시내 곳곳에 횡단보도 대신 144개의 보도육교를 설치했다. 차량 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였다.

사람들은 도로를 건너려면 먼 길을 돌고 돌아 육교나 지하도를 이용해야 했고,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무척 어려운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는 도시 공간에서 철저히 배척당했다. 서울에 대대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한 육교는 70~80년대에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이런 육교가 최근 사라지고 있다. '보행권'이 강조되면서 각 지방정부가 육교를 없애고 사람 중심으로 도로를 운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서울 광진구는 지난달 31일 광장동 339번지 아차성길을 횡단하는 19년 된 워커힐 보도육교를 철거했다. 대신 그 자리에 횡단보도를 설치했다. 광진구는 "도시경관을 해치고 노약자와 장애인들의 통행에 불편을 줬다"고 철거 이유를 밝혔다. 특히 최근 5년 동안 서울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2005년 222개였던 육교는 2009년 12월 현재 187개로 줄어들었다.

지난달 12일 충남 천안시도 직산네거리에 설치돼 있던 삼은육교 철거 공사를 시작했다. 휠체어와 유모차 통행이 어렵고, 겨울철에는 물이 얼어 안전사고가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다. 강원 원주시는 주민 설문조사를 거쳐(철거 찬성 94%) 지난 8월 태장동 육교를 철거하고 횡단보도를 설치했고, 부산시는 올해 초 육교를 무려 11개나 없애고 횡단보도를 놓았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콘텐츠학)는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육교 주변에서 오히려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며 "육교를 통해 길을 건너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보행자들이 무단횡단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이어 "서울 광화문에 횡단보도를 설치한 예처럼 사람 중심으로 도로를 운영해도 교통문제를 충분히 풀 수 있다"며 "반인간적인 육교를 하루빨리 철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해마다 652만3000여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56만7913명이 살고 있는 제주에는 육교가 하나도 없다. 운전자들이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수많은 보행자들이 쉽게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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